몇 년 전 두 도시 이야기 번역본을 비교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여러 판본이 있지만 다들 장단점이 있어 원문과 번역 내용을 직접 비교해볼 수 있게 정리한 글이었다.
그 뒤 작년 2025년에 현대지성, 2026년에 문학동네에서 새 번역본이 나왔고 현재는 AI가 자연스러운 번역이 가능하니 다시 비교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하나 더 - 차라리 나도 직접 번역해보자.
AI는 챗GPT를 사용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번역이 우수한 AI라고 생각했다.
1. 최고의 시대, 최악의 시대
It was the best of times, it was the worst of times, it was the age of wisdom, it was the age of foolishness, it was the epoch of belief, it was the epoch of incredulity, it was the season of Light, it was the season of Darkness, it was the spring of hope, it was the winter of despair, we had everything before us, we had nothing before us, we were all going direct to Heaven, we were all going direct the other way — in short, the period was so far like the present period, that some of its noisiest authorities insisted on its being received, for good or for evil, in the superlative degree of comparison only.
현대지성
최고의 시절이었고 최악의 시절이었다.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이 솟구치던 시기였고 불신이 드리우던 시기였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그리고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사람들 앞에는 모든 것이 놓여 있었고, 또한 아무것도 없었다. 모두가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듯했고, 동시에 모두가 정반대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 같았다. 요컨대, 그 시대는 우리의 현재와 너무 흡사하여, 목소리 큰 일부 권위자들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극단적으로 비교해야만 당대의 상황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디킨스의 만연체 문체를 끊어놨다. “믿음이 솟구치던”, “불신이 드리우던”, "우리의 현재"라고 의역을 해놨다.
문학동네
최고의 시절이었고 최악의 시절이었다. 지혜의 시기였고 어리석음의 시기였다. 믿음의 시대였고 불신의 시대였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고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가 천국으로 직행하고 있었고 또 그 반대편으로 직행하고 있었다. 요컨대 그 시대는 지금의 시대와 너무도 비슷했으며, 그 결과 그 시대의 가장 목소리 큰 권위자들 가운데 일부는 그 시대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최상급의 묘사로만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역시 만연체 문체를 끊어놨다. 그리고 "최상급의 묘사"는 무엇인지 잘 이해가 안된다.
AI 번역
최고의 시대였고 최악의 시대였다. 지혜의 시대였고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시대였고 불신의 시대였다. 빛의 계절이었고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고,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곧장 천국으로 가고 있었고, 모두 곧장 그 반대편으로 가고 있었다. 한마디로 그 시대는 지금과 너무나 닮아 있어서, 목소리 큰 권위자들은 좋게 보든 나쁘게 보든 오직 가장 극단적인 말로만 그 시대를 평가해야 한다고 우겨댈 정도였다.
역시 만연체 문체를 끊어놨다. AI는 오역은 아니지만 사족을 좀 붙이는 것 같고 읽기는 쉬운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 번역
최고의 시절이었고, 최악의 시절이었고, 지혜의 시기였고, 우둔함의 시기였고, 믿음의 시대였고, 불신의 시대였고, 광명의 계절이었고, 암흑의 계절이었고, 희망의 봄이었고, 절망의 겨울이었고, 사람들은 앞에 모든 걸 가지고 있었고,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모두 천국으로 향하는 중이었고, 모두 저 세상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 간단히 말해 당대는 현 시대와 너무 비슷했기에 목청 큰 일부 권위자들의 주장은 좋든 나쁘든 극단적인 비교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원문의 문체를 살리면서 우리말 표현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문단을 끊지 않았고 대시도 넣었다. 우리말에서 콤마는 명사 나열에만 사용하는 게 관례지만 역시 문체를 살리느라 일부러 일일이 넣었다.
앞의 극단적인 대비가 다음 문장까지 한 호흡으로 이어지는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2. 사우스콧 부인과 예언자
Mrs. Southcott had recently attained her five-and-twentieth blessed birthday, of whom a prophetic private in the Life Guards had heralded the sublime appearance by announcing that arrangements were made for the swallowing up of London and Westminster.
현대지성
얼마 전 사우스콧 부인이 스물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했는데, 예지력을 지녔다는 근위 기병대 병사 하나가 런던과 웨스트민스터를 집어삼킬 재앙이 머지않아 닥칠 거라고 공언하며 그녀의 숭고한 등장을 미리 알렸다.
"재앙"이 어디서 나왔지?
문학동네
사우스콧 부인이 막 스물다섯번째 축복받은 생일을 맞이했으니 예언 능력을 지닌 근위 기병대 사병 하나가 런던과 웨스트민스터를 집어삼킬 재앙이 준비되어 있다는 예언을 통해 그녀의 숭고한 출현을 일찌감치 알렸더랬다.
역시 "재앙"이 어디서 나왔지? 재앙이 준비돼 있다는 표현도 어색하다.
AI 번역
사우스콧 부인은 얼마 전 복된 스물다섯 번째 생일을 맞았다. 이에 앞서 근위기병대의 한 예언자 같은 사병은 런던과 웨스트민스터가 집어삼켜질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그녀의 숭고한 등장을 예고했다.
AI도 “집어삼켜질” 같은 어색한 표현을 쓰는군. 하긴 요즘 유행하는 “~했어서” 같은 표현도 AI가 하더군.
내 번역
사우스콧 부인이 이제 스물다섯 번째 복된 생일을 맞이하는 때였는데 근위기병대의 예지력 있는 사병 하나가 그녀의 대단한 출현을 예고하면서 장차 런던과 웨스트민스터를 집어삼킬 것이라고 단언했다.
우리나라 옛날식 표현이라면 런던과 웨스트민스터를 "종묘사직"이라고 하고 싶었는데 직역이 더 적당한 것 같다.
원문에서는 누가 집어삼키는 지가 불분명한데 나는 사우스콧이라고 봤다. 말하자면 종교 운동으로 많은 사람을 끌어들였으니 집어삼킨 주체가 사우스콧이라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원문처럼 주체가 애매하다면 번역에 어울리진 않지만 아래처럼 표현하고도 싶다.
장차 런던과 웨스트민스터가 꼴딱 넘어갈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렇게 본다면 "집어삼킬"이란 표현도 사실 좀 어색하고 "현혹할"이 더 맞을 거 같다. 하지만 의역으로 너무 간 것 같아 그대로 두었다.
3. 프랑스의 만행
Under the guidance of her Christian pastors, she entertained herself, besides, with such humane achievements as sentencing a youth to have his hands cut off, his tongue torn out with pincers, and his body burned alive, because he had not kneeled down in the rain to do honour to a dirty procession of monks which passed within his view, at a distance of some fifty or sixty yards.
현대지성
게다가 프랑스에서는 5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비를 맞으며 지나가는 수사들의 초라한 행렬을 보고 무릎 꿇고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젊은이의 양손을 자르고 집게로 혀를 뽑는 것도 모자라 산 채로 불태운 사건도 있었다.
"Under …"로 시작하는 문구는 아예 번역을 안했다. “humane achievements” 같은 반어적 표현도 핵심인데 빠뜨렸고.
문학동네
게다가 기독교 사제들의 지도하에 한 젊은이의 양손을 자르고 혀를 집게로 뽑아내고 몸을 산 채로 불살라버리도록 선고하는 것 같은 지극히 인도적인 성취를 즐기고 과시하기까지 했는데, 그가 50미터쯤 떨어진 거리에서 수도사들의 너저분한 행렬이 지나가는 걸 보고도 빗속에서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어순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이 잘 됐다.
AI 번역
게다가 프랑스는 기독교 성직자들의 인도 아래, 비 오는 날 오십에서 육십 야드쯤 떨어진 곳을 지나가는 지저분한 수도승들의 행렬에 경의를 표하려 무릎 꿇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젊은이의 두 손을 자르고, 집게로 혀를 뽑고, 산 채로 불태우라는 형을 내리는 등의 인도적인 업적을 즐기고 있었다.
내 번역
게다가 프랑스는 기독교 성직자들의 지도 하에 나름의 즐거움을 추구하고 있었으니 한 청년에게 양손 절단, 집게로 혀 뽑기, 산 채로 화형이라는 선고를 한 인도적인 업적 달성이 그것이었다. 이유는 50~60야드(50여 미터) 거리에서 남루한 수도사 행렬을 보고도 빗속에서 무릎을 꿇어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sentence"가 상당히 법적인 단어이므로 형벌에 대해서는 풀어쓰는 것보다 명사형으로 쓰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순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AI와 내가 번역해보니
세 문단을 봤는데도 그 짧은 문장들의 번역이 다 다르다. AI가 많이 발전해서 자연스러운 한국어가 되긴 하지만 아직도 글의 분위기에 맞는 표현은 부족해 보인다.
하지만 번역본 책들은 어떤가. 지난 번 글에서도 여러 번역본이 만족스럽지 않음을 지적했지만 최근에 나온 두 책조차 아직도 부족한 면들이 많이 보인다. 특히 1부 1장은 다른 장의 사건 묘사형 내용보다 작가의 문체나 풍자가 많이 들어가는 장인데 최신 번역임에도 글의 맛이 잘 살아나지 않는 것 같다.
시간만 되면 내가 완역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까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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