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계 곳곳에서 40도가 넘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에어컨이 보편적이지 않은 유럽에서는 사람도 많이 사망했다고 한다.

어제 서울도 엄청 더웠다. 36.7도.

퇴근 시간에 1호선 만원 전철을 탔는데 에어컨 이상으로 냉방 상태가 좋지 않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밖에서 이미 열을 잔뜩 받은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려 들어왔고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빽빽했다.

내 앞에 있던 남자는 손 선풍기를 쐬면서도 땀을 줄줄 흘렸다. 옷도 많이 젖어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에게 걱정스럽게 말하는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요? 어디까지 가요?
어쩌면 좋아. 내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여기 앉을래요?

아무래도 누군가 탈진한 모양이었다. 사람이 많아 가렸지만 얼핏 여자분이 멍하니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밖에서 이미 지친 상태로 전철을 탔는데 안에서도 열을 식히지 못했으니 쓰러질 만했다. 전철의 냉방 문제가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사람을 쓰러뜨릴 수 있는 위험 상황이 된 것이다.

더위로 사람이 쓰러지는 건 처음 보는 일이었지만 내일은, 내년에는 더 많은 사람이 그럴 수 있다.

1994년의 더위

내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더위는 1994년 여름이다.

그때는 가정집에 에어컨이 별로 없었다. 은행으로 피서 간다는 얘기가 있을 시절이었고 대학생이던 나는 여자친구와 까페나 극장에 가지 않는 이상 방학 동안 에어컨을 접할 일이 없었다.

길을 걸으면 아스팔트와 건물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얼굴에 후끈하게 닿았다. 밤새 선풍기를 켜고 자도 더워서 수시로 깼다. 한밤중에 샤워하고 다시 자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도 이미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해 더위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할 만큼 이례적이었다. 지금은 집에 에어컨이 있어 그렇게 살지는 않지만 그래서, 여름 내내 에어컨을 상시로 켜야만 평범하게 생활할 수 있는 상태가 과연 정상인가? 에어컨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살까?

1994년에는 한 번의 끔찍한 여름으로 기억됐던 더위가 이제는 일상적인 여름이 됐다.

사람이 쓰러지는 것만 문제가 아니다

폭염의 직접적인 피해는 개인이 아프고 죽는 것이지만 조금만 넓게 봐도 인류 생존의 문제로 연결된다.

사람은 에어컨을 켜고 더위를 피할 수 있지만 논과 밭, 과수원과 축사는 그렇지 못하다. 기온이 너무 높으면 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개화기라면 열매가 잘 맺히지 않는다. 가뭄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면 어렵게 키운 작물이 한꺼번에 망가진다.

가축은 더위에 사료를 덜 먹고 성장이 늦어진다. 우유와 달걀 생산량이 줄고 심하면 집단 폐사한다. 바닷물 온도가 올라서 양식장 폐사가 발생했다는 소식도 자주 들었다.

한 지역의 흉작은 수입으로 버틸 수 있다. 그러나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폭염과 가뭄을 겪으면 생산량이 줄고 각국은 식량 수출을 제한할 수 있다. 결국 돈이 없는 나라와 가난한 사람부터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워진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는 환경 변화로 작물이 하나씩 사라지고 대부분 지역이 사막화되며 농업이 인류에게 남은 가장 중요한 산업이 된다. 극단적인 설정일 수 있지만 먹을 것을 안정적으로 생산하지 못하면 다른 산업이 아무리 발전해도 문명을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은 현실적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먹고 사는 문제 자체를 대신할 수는 없다.

왜 이렇게 더워졌을까

익히 알고 있는 대로 가장 큰 원인은 산업화 이후 쌓여온 온실가스다. 석탄과 석유, 가스를 태우며 생긴 온실가스가 지구의 열을 밖으로 배출하기 힘들게 막고 있다. 여기에 도시의 아스팔트와 콘크리트가 열을 쌓아놓으면서 밤에도 잘 식지 않는다.

폭염일수록 냉방 전력은 더 필요하고 그 전기를 화석연료로 만들면 다시 기후 영향이 커질 것이다.

혹시 최근에는 AI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재작년부터 올해에 이르기까지 AI가 일반화되면서 사용이 폭증했고 그에 따라 전기 소모가 상당하다고 들었다. 전체 에너지 사용량 중 AI 비중이 아직은 미미한 수준일 수 있지만 분명 AI 사용이 늘수록 전기 사용량이 늘어나고 거기에 화석 연료를 사용한다면 온실가스도 늘어날 것이다.

나도 AI를 쓰고 관련된 일을 한다. 그래서 묻게 된다.

AI가 주는 편리함만큼 우리는 더 잘 살 수 있을까?

이미 비용을 치르고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막대한 돈이 든다고 한다.

그런데 대응하지 않아도 비용은 더 나가게 된다. 이미 폭염으로 인한 의료비와 냉방비, 홍수와 산불 비용, 식품 가격과 보험료로 비용을 내고 있다.

또한 불공평한 것은 원인을 만든 사람과 먼저 피해를 보는 사람이 다르다는 점이다. 냉방이 잘되는 집과 자동차를 가진 사람보다 야외 노동자와 농민, 노인과 저소득층이 먼저 쓰러진다.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한 가난한 나라가 가뭄과 홍수에 더 취약하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세대가 지금 우리가 사용한 에너지의 비용을 떠안는다.

대응 비용이 아깝다고 미루는 동안 우리는 더 큰 비용이 될 위기를 쌓아가고 있다.

시험 공부 벼락치기처럼 대응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종종 그러지 않나? 시험 공부는 코앞에 닥쳐서야 한다.

문제는 국가와 기업도 그러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기후위기도 정말 위험해진 뒤에야 꽁지에 불이 난 것처럼 허둥지둥댈 것 같아 보인다.

그때라도 늦지 않으면 다행이다. 기후위기는 시험 전날 밤을 새는 것처럼 만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미 데워진 바다는 바로 식지 않고 녹아버린 빙하와 사라진 숲도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대학 때 배운 엔트로피와 비가역성이라는 개념을 종종 떠올린다. 한 번 일어난 변화는 저절로 원래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 인간의 에너지 소모는 비가역성의 대표적인 사례고 그걸 완전히 처음으로 돌리는 건 마법 세상에서나 가능하다.

인간은 더 편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문명을 발전시켰다. 그 과정에서 매연은 공기 중으로, 폐수와 폐열은 강과 바다로, 쓰레기는 도시 밖으로 쏟아냈다. 그게 어디로 가나. 결국 거기가 거기지. 우리 지구일 뿐이다.

어쨌든 할 일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에어컨과 자동차, 컴퓨터와 AI를 버리고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익히 많이들 얘기하던 것들부터 실행해야 한다.

전기는 더 깨끗하게 만들고 건물과 도시는 적은 에너지로도 운영할 수 있게 바꿔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자원 소모를 줄여야 한다.

개인의 절약도 필요하다. 하지만 개인들의 역할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정부와 기업이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어제 전철에서 누군가 쓰러졌을 때 사람들은 걱정하며 말을 걸고 자리를 내주려 했다.

괜찮아요?
여기 앉을래요?

당장 쓰러지는 사람을 챙기는 일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쓰러지는 이런 환경을 절실하게 바꿔야 한다.

사람이 쓰러지고 가축이 죽고 작물이 말라간다. 우리는 이미 비용을 치르고 있다.

40도 폭염은 피할 수 없다고 즐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피할 수 없으면 사람은 쓰러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