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이>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그리스 로마 신화 관련 책이 다시 인기를 끈다고 한다. 중고 시장에서는 특정 작화가의 책이 100만 원에 올라왔다는 소식이 화제가 됐다.

그리스 로마 신화, 디오니소스 편의 한 장면
그리스 로마 신화, 디오니소스 편의 한 장면

오래된 어린이 책을 100만 원에 판다고? 처음엔 신기하고 살 사람이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도 어렸을 때 가지고 있던 기억나는 책들이 있다. 동화책, 학습 백과, 월간 잡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단연코 향수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책 하나가 있으니 바로 <안데르센 동화 전집>이다.

동화 자체의 환상적인 이야기가 아련한데 많이들 알고 있는 <인어공주>를 비롯해 <성냥팔이 소녀>, <주석 병정>, <엄지공주>, <눈의 여왕>, <미운 오리 새끼> 등 아름다우면서 신기하고 때로는 슬픈 이야기도 많다. 난 <작은 클라우스와 큰 클라우스> 같은 블랙 유머도 좋아서 참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위 그리스 로마 신화도 그렇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더 사로잡은 건 책 속의 삽화다.

안데르센 동화 - 목차 삽화
왕자님과 공주님은 동화에 무조건 나와야지

안데르센 동화 - 작은 클라우스, 큰 클라우스
마차의 마님이 뭔가 이상하다

안데르센 동화 - 길동무
어디를 이렇게 사색하며 걷는 것일까

안데르센 동화 - 성냥팔이 소녀
웅크린 자세와 시선이 참 안쓰럽다

동화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참 잘 살렸다. 어렸을 때는 그저 동화 나라의 그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그림의 섬세한 감성과 스타일이 새삼 눈에 들어온다. 작화가는 김광배님으로 그림책, 역사화 등 분야에서 활동한 분이다.

우리 집은 여러 번 이사하면서 책을 많이 버려 안데르센 동화는 오래전에 없어졌는데 지금 찾아보니 신진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며 100만 원에 매물이 올라온 경우가 있다. 왜 이렇게 높은 가격이 붙었을까? 그리스 로마 신화와 달리 이 책은 나에게 의미가 있고 선뜻 사지는 못하더라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성인이 돼서 구매력이 생긴 사람들이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그 향수를 되살리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싶다. 동화책 내용이야 어디서든 사서 볼 수 있지만 이 삽화로 나온 책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귀중한 기억을 현실에 다시 살릴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이지 않은가?

철학서인 <카오스의 아이들> “무엇이 실제인가” 절에 이런 내용이 있다.

디지털 방식으로 저장되고 전자 매체를 통해 확산되는 데이터가 등장함으로써 구식 인쇄 매체의 중요성이 더해졌다.
…
인쇄 매체는 단지 정보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형체와 중량을 가진 손에 잡히는 대상들이고 작가와 주제에 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렇다. 책을 직접 가지면 작가와 좀더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그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그림에서 나의 어린 시절과도 연결되는 느낌을 받는다.

컴퓨터 화면으로도 삽화를 보고 PDF로 책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그대로의 책장을 넘기고 누렇게 변한 종이 사이 글을 읽으며 익숙한 그림을 다시 만나는 것은 분명 다른 경험일 것이다. 그 물건 자체가 기억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 너무 흔해서 별생각 없이 놔둔 것들 중에도 훗날 내 일부로 기억되는 게 있을까?

어쩌면 내가 다시 만나고 싶은 것은 오래된 동화책을 펼쳐 보던 어린 시절의 나인지도 모르겠다.